마이클 조던은 미국 NBA를 넘어서 세계농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선수 중에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괴물같은 피지컬에서 오는 폭발적인 점프력과 천부적인 슛감각, 그리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체육관의 불이 꺼질때까지 수천번의 슛연습을 하는 연습벌레가 더해진 완전체 조던은 2번의 은퇴 속에서도 시카고 불스의 두 번의 3연패를 이끌었고, NBA를 뛰어넘어 세계 농구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설이 되기까지 조던은 수십번의 시행착오와 수천번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88-89 시즌 피스톤즈와 있었던 '그 일'이었다.

1984년에 시카고 불스의 지명을 받아 NBA 무대를 밟은 조던이 첫 NBA 우승을 맛본 년도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1년이었다. 이미 데뷔 당시부터 슈팅 가드로서도 장신인 198cm의 키를 가졌고, 천부적인 운동감각으로 상대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앞을 번번히 가로막는 팀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재아 토마스, 조 듀마스, 데니스 로드맨 등이 이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였다. 당시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조던을 몰아붙인 디트로이트의 배드보이즈에 조던은 지쳐버렸고, 우승의 문턱에서 디트로이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 1989년 4월의 일.

당시 디트로이트의 조 듀마스는 힘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여러 번 조던의 심기를 건드렸고, 때로는 거의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조던을 집중마크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조던의 드라이브 인은 배드보이스에 막혀 효과적인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조던이 막히다보니 디트로이트 선수들에게는 조던만 막으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으며, 결국 시카고는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멈춰서야만 했다. 

이 패배는 마이클 조던은 피지컬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시즌이 끝난 후 바로 개인 트레이너인 팀 그로버를 고용해 피지컬을 키우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로버는 처음 조던을 만나자마자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신체적인 조건은 더없이 뛰어나지만, 코어 근육이 부족해 폭발적인 힘을 봉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후 그로버는 조던으로 하여금 복부 근육뿐만 아니라, 측면 근육과 등 근육으로 조던의 코어를 단련시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이유로는 다양한 운동 움직임을 수행하기 위한 많은 힘은 코어에서 나오며, 리바운드에서나 심지어 드리블링에서도 코어가 핵심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전반적인 힘과 민첩성을 유지하고 부상을 입지 않으려면 강력한 코어를 가지는 것이 필수라고 그로버는 판단했던 것이었다.

조던은 운동 초기 그로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농구에 도움이 되는 근육을 발달 시켜 줄 것이라 생각했던 조던에게트레이닝장에서 하염없이 역기만 들어올리는 것이 농구에 도움이 되는지 조던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로버는 회상했다.

조던은 그로버의 끈질긴 설득에 1개월만 시험함아 트레이닝을 받자는 결심을 했고, 이후 단내나는 코어 트레이닝에 돌입하게 되었다.

조던은 메디신 볼로 하는 운동을 통해 코어 강화를 해나갔다. 대표적인 예로 윗몸 일으키기를 메디신 볼을 던지면서 하는 것으로, 조던은 이 운동을 통해 고관절 굴곡근을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코어에 자극을 주어 코어근육까지 발달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던은 레그 레이즈를 비롯한 운동 뿐만 아니라, 손을 짐볼에 얹은 채 팔굽혀 펴기를 하는 등 다양한 코어 훈련을 소화해냈다.

그로버는 훗날 인터뷰에서 “조단은 농구 연습을 가기 두 시간 전, 일주일에 이틀씩 코어 운동에 집중했다.”고 떠올렸다. 이어서 “그는 각각의 운동을 10번에서 15번, 세 세트씩을 했다.”고 말했다.

운동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휴식이기에 그로버는 조던에게 일주일에 2-3번씩만 코어 트레이닝을 소화시켰고, 나머지는 휴식이나 볼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조던의 코어 트레이닝은 진화했다. 운동 프로그램에 수많은 운동들을 더한 것이었다. 그는 바이셉스 컬과 데드 리프트, 척추 기립근 운동인 굿 모닝, 그리고 역도에서 많이 쓰이는 파워 클리닝, 그리고 벤치 프레스와 같은 운동을 모두 한 사이클 안에 집어넣었다.

스쿼트를 할 때에도 보통 사람처럼 하지 않았다. 스쿼트를 한 후 다시 올라가기 전 밸런스 보드에서 스쿼트 자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밸런스 보드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쿼트보다 몸 전체에 걸쳐 균형과 안정성을 만들어 준다는 그로버의 의견 때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이외에도, 민첩성 운동을 고안해 실행에 옮겼다. 대표적인 운동으로 손을 바닥에 놓고 다리를 곧게 세우고 다시 뒤로 걸으면서 바닥을 가로질러 걷는 스트레칭이다.

운동 시간에도 조던은 심혈을 기울였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조던은 1시간 가량 이른 아침에 운동했다. 운동 선수들은 오후나 저녁 운동 선수들보다 아침 운동을 더 열심히 운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던은 민첩성을 위해 노력했고 일주일에 3일 동안 가벼운 역도와 빠른 반복 운동을 통해 피지컬을 키워나갔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미 가지고 있던 피지컬에 강력한 코어까지 더해지자 조던의 드라이브 인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빨라졌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스카티 피펜과 다른 불스의 팀 동료들까지, 아침 훈련에 합류했고, 이는 곧 불스 3연패의 원동력이 되는 ‘브렉퍼스트 클럽’이 되었다.

이 훈련 방법이 적용된 후, 시카고 불스는 89-90 시즌 또다시 무릎을 꿇게 되었지만, 코어 트레이닝을 거쳐 조던의 운동능력이 절정에 달하기 시작한 90-91시즌부터 92-93년까지 세번의 NBA 파이널 우승을 이뤄냈으며, 94년 조던이 잠시 메이저리그로의 외도를 마친 이후 복귀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또 다시 세번의 연속 우승을 이뤄내는 전설을 써내려갔다.

1989년의 그 일은 마이클 조던을 농구를 잘하는 선수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완전체 선수’로 진화시키게 된 기폭제가 되었고. 이후 영광의 시간을 거쳐 적지 않았던 공백기 속에서도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한 채 2003년까지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원천이 되었다.

사진=게티이미지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